토요일이던 지난달 22일, 해질 녘이 다가오는 오후 4시 무렵에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ㅇ카페엔 429㎡(약 130평)에 이르는 실내에 빈자리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도심에서 벗어나 있는 이 카페는 창고형 건물 옆에 늘어선 은행나무로 유명한 곳이다. 은행잎은 이미 다 떨어져 바닥에 쌓여버렸지만, 반려견을 동반한 손님들은 실외에 마련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은행잎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바빴다.
서울 근교인 고양시와 파주시, 김포시에는 이와 비슷한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많다. 파주시 조리읍의 공릉저수지 옆 ㅁ카페는 면적이 2357㎡(약 714평)에 이르는, 유럽의 대저택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자유로 근처의 또 다른 ㅁ카페는 수많은 관엽식물로 가득한 실내 정원을 자랑한다. 김포의 ㅍ카페는 한꺼번에 22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카페로 알려져 있다.
커피 등 음료와 빵류를 팔지만, 맛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곳은 드물다. 그보다는 강, 바다, 저수지, 산, 정원 등의 아름다운 풍경, 벼농사를 짓는 논 등 주변 풍경이 주안점이다. 실내에 외국의 거리 모습을 재현한 곳도 있고, 반려동물이나 어린이가 놀 수 있는 공간을 자랑하는 곳도 있다. 불멍을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지금까지 지인들과 함께 60∼70여곳 정도 빵지 순례(유명 베이커리 카페를 찾아다니는 일)를 다녔다는 주부 김아무개(54·서울 상암동)씨는 “어느 카페의 커피나 빵이 좋아 단골로 가는 게 아니라, 도심을 벗어나 소풍 가듯 나갔다가 들르는 곳들”이라고 말했다.
이런 대규모 베이커리 카페는 언제부터 유행 상품이 되었을까? 한겨레가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19년 4분기부터 갑자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정치권이 경제 활력을 제고하겠다며 가업상속공제 활성화를 논의하고, 정부가 9월 정기국회에 관련 세법 개정안을 제출한 직후다.
시설 면적 300㎡ 이상 제과점 영업 인허가 건수는 2015∼2018년 사이 연간 10∼19개, 연평균 15.3개에 그쳤다. 그러던 것이 2019년 들어 4분기에만 17개가 늘어나며 그해 44개 증가했다. 2022년 53개가 늘어나는 등 2020∼2024년 사이 5년간은 연평균 44.4개씩 증가했다. 올해도 10월 말까지 34개가 늘어났다. 2019년 이후 새로 인허가를 받은 업소는 모두 300개로, 2018년 말 영업 중이던 154개의 갑절에 이르렀다.
그동안 폐업한 업체도 있어서 10월 말 영업 중인 300㎡ 이상 제과점은 전국에 328개다. 이 가운데 61%인 200개는 2019년 10월 이후 인허가를 받은 곳이다. 현재 업소 위치는 경기도가 54개로 가장 많고, 서울이 29개, 대구 15개, 인천 10개 등이다.
커피 등 음료와 함께 직접 제빵을 해서 파는 카페들은 일반음식점으로 인허가를 받는 일도 많다. 이를 고려해, 경기도에서 기타(한식·중식·일식 등이 아닌) 일반음식점 인허가를 받은 업소 가운데 시설 면적이 300㎡를 넘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를 추려보니 약간의 시차를 두고 대형 제과점 인가와 비슷한 흐름이 보였다. 인허가 업소 수가 2020년 25곳에서 2021년 32곳으로 늘더니, 2022∼2024년엔 43곳, 45곳, 40곳 증가했다. 이 가운데 시설 면적이 1천㎡를 넘는 곳도 34곳이나 됐다. 이와 별도로 경양식 일반음식점으로 인가를 받은 대형 업체도 있었다.
커피숍은 아무리 커도 가업상속공제 대상이 아니지만, 일반음식점이나 제과점인 베이커리 카페는 공제를 받을 수 있다. 2019년 1월30일 홍남기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 토론회에서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가업상속공제 요건 완화 및 사후관리기간 단축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 법안 발의가 쏟아졌다. 정부는 여당과 협의를 거쳐 가업상속공제 후 사후관리기간(고용의무 유지 기간)을 10년에서 7년으로 단축하고, 고용의무 이행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을 9월3일 국회에 제출했다.
현재의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피상속인이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을 장기간 경영하다 상속인이 물려받아 2년 이상 경영하면 최대 600억원(30년 이상)까지 최고세율이 50%인 상속세 과세 대상에서 빼준다. 돈이나 주택으로 거액을 상속하면 상속세를 물어야 하지만, 대형 베이커리 카페를 차려 10년 이상 경영하다 물려주면 세금을 거의 안 내도 된다. 2019년 세법 개정에 따라 7년으로 줄어든 사후관리기간은 2023년부터 5년으로 더 짧아졌다.
이우용 송정회계법인 상속증여센터 대표는 “상속공제 제도가 처음 생길 때는 공제액이 최대 1억원이어서 큰 관심이 없다가 공제액이 점차 늘어나자 관심이 커졌다”며 “식당은 크게 만들어 경영하기 어렵고 요리 실력도 중요하지만, 베이커리 카페는 그렇지 않아서 (상속공제를 겨냥한) 대규모 부동산 투자가 쉽다”고 말했다. 정해경 세무사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들어서면 땅값이 오르는 경우가 많다”며 “카페 경영으로는 적자가 나더라도 땅값이 오르는 것을 염두에 두고 대형 카페를 창업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일하는 사람들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승계자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경영을 승계하는 상속인에게 상속세를 감면해주는 제도 취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2019년 이후 문을 연 대규모 베이커리 카페가 모두 가업상속공제를 노려 창업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일부는 이미 폐업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업을 이어간 뒤에는 애초 의도가 뭐였든 상속공제를 받을 조건을 갖추게 된다. 대형 베이커리 카페의 유행은 앞으로 상속세를 우회할 수 있는 새로운 부동산 투자 수법이 더 개발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대규모 제과점과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반면, 소규모 제과점은 추풍낙엽처럼 폐업이 늘었다. 300㎡ 미만 규모의 제과점은 2015∼2021년 사이 연평균 400개씩 증가해왔다. 2022년 161곳 순증에 그치더니, 2023년에는 폐업 수가 인허가 수보다 많아 156곳 줄고, 2024년 155개가 더 감소했다. 2024년 전국에서 모두 3566곳이 폐업했는데, 이는 전년도 말 영업 점포 수(1만9185곳)의 18.6%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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